오스탕스가 죽어 가고 있을때 두 노파는 곡을 하기 시작했어요. 죽을 때까지 기다려 곡을 하다가는, 오스탕스가 소유했던 것들을 집어갈 타이밍을 놓칠 것을 걱정한 것이지요. 이런 소리들을 죽어가는 오스탕스는 듣게 됩니다. 오스탕스는 그 순간 어땠을까요? 죽어가고 있을때 다른 사람들은 곡소리를 하며 서로 자신의 물건들을 차지하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자신의 집안을 뒤지고 다니고 있는 상황이면 얼마나 슬플까요.
조르바는 더할 나위 없이 다정하게 오스탕스의 눈꺼풀을 내려 줍니다. 그리고 조르바는 생각하지요. '한 줌의 흙이로구나, 배가 고팠던, 웃기도 했던, 키스도 했던 한 줌의 흙, 인간의 눈물을 흘리던 진흙 한 덩어리'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요.
오스탕스를 간직하는 것은 그녀의 슬리퍼예요. 그녀의 발 모양을 충직하게 간직하고 있는, 인간의 마음보다는 더 정이 있는 슬리퍼. 살아 있을 때의 자신을 기억해 주는 사람이든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겠지요. 애니메이션 영화 '코코 '가 생각납니다. 살아있는 사람들 중에 죽은 자신을 기억해 주는 사람이 없을때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고 말하는 영화예요.
어떤 일을 하며 살아야 의미 있는 삶이 될까요? 오스탕스가 죽어갈 때의 상황을 보며 내가 죽어 누워 있을때 울어주는 사람들에게 잘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누가 울어줄까요? 부모님, 자식, 친구, 동료, 이웃 누가 울어줄까요? 내가 죽어 누워 있을때 찾아와 울어줄 사람들에게 잘 하면서 살아갈거예요. 살아있을때 나누고 베풀면서 살아야겠어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Posted by 세계문학 인물평론가 허정미